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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신나라 레코드 아가동산 김기순

by Gin-84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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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기순

넷플릭스에 방영되는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연일 화제입니다. 
아가동산은 1982년 김기순이 만든 협업마을을 지칭한 신흥종교입니다. 
대법원 판결상으로는 사이비라고 판정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주는 김기순으로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작은 전라북도 현재 익산시의 주현교회라는 사이비 종교였습니다. 
당시 주현교회는 이교부라는 사람이 이끌었던 곳으로 삭발교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삭발교라는 기이한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신도들에게 머리를 밀게 하기도 하고, 옷을 벗고 껴안고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사회적으로 공분을 삽니다. 


결국 폭행사건으로 이교부는 구속되고 이틈을 타 김기순이 이교부의 이름을 빌려 신도들을 이끌며 세를 확장해 나갑니다.
이교부는 자신의 신도들을 빼간 것에 분개해 출소 후 거의 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가동산 와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아가동산 이탈자와 함께 검찰에 출두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김기순의 방이 현금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가동산의 교리는 김기순이 신으로 자신은 3살 아기이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이것을 아가야 법으로 불렀습니다. 

 

2. 아가동산

 

1982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대대리, 도리리 주변 4천 평 정도를 구입 '아가동산'으로 명명합니다. 
거의 신도들에게 받은 헌금 혹은 그들이 떡장사, 어묵팔이, 앵벌이 등으로 바친 돈으로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가동산은 노동착취를 당연시했으며 협업마을이라고 말하지만 철저히 공동작업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농장으로 장부, 의료, 학생, 세무등의 관리직을 두었습니다. 

신도들은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했으며 낮에는 농장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CD 및 테이프를 만들며 혹사당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신나라네이처 팜이라고 불리는 곳이 이천시 도리리에 존재합니다.

신도들을 각종 중노동에 몰아넣고 군림하며, 자기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다른 신도들을 동원해 구타 사망까지 이르게 했다는 의혹을 받습니다. 

특히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탄로 나 공분을 삽니다. 7세 아동 최모군 과수원 관리자였던 윤 모 씨, 교주의 아들을 현혹시켜 교리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죽은 강모 양 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더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유족들의 비협조 경창의 부실한 수사등으로 살인은 무혐의 처리 됩니다. 

 

당시 법정에서 자신은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았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았으며, 신격화 또한 하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당시 검사는 김기순이 차분히 흥분하지 않고 잘 말했다고 합니다.
당시 국내 최고의 변호사들을 선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인들은 1년에 고작 4번의 휴가만을 받았으며 주말 추석 설 연휴에도 일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각종 외부 매체의 차단 가족면회 등은 완전히 금지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감옥 아닌 감옥이었네요.

 

가족에게도 어머니를 아줌마 아버지를 아저씨라 부르게 했으며 부부간 동침도 금지했다고 합니다. 
신도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은 학업을 중단시키기도 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런 착취로 6년 만에 4천 평의 땅이 13만 평으로 늘어나고, 1993년에는 '신아영농정합법인'을 만들어 농림수산부로부터 첨단기술 농업시범단지로 선정되면서 정부와 경기도청 등에서 국고 23억 5천만 원가량의 지원받기도 합니다. 

3. 신나라레코드, 근황

1982년에는 신나라 레코드 물류를 만들어 처음에는 카세트 트럭 들으러 음반을 팔다가, 1984년 종로에 매장을 연뒤 가격파괴 도매 전략으로 음반계를 장악하기에 이릅니다. 
1992년 킹레코드를 설립하고 하나, 명반레코드를 세우기도 합니다. 



김기순은 결국 징역 4년을 받고 출소 후 망한 줄 알았으나 지금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합니다. 
신나라 레코드는 아직 건재하며 용산, 센트럴시티 등에 지점이 있습니다. 신나라 레코드의 대표이사는 신옥희로 되어있는데 사건당시 아가동산의 경리 담당으로 김기순의 측근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신나라는 신난다가 아니라 신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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